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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산도르 마라이 作) - 41년간의 기다림, 너에게 묻고 내가 답하다. 본문

책 이야기

열정(산도르 마라이 作) - 41년간의 기다림, 너에게 묻고 내가 답하다.

추락천사 2017. 12. 1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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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국내도서
저자 : 산도르 마라이(Sandor Marai) / 김인순역
출판 : 도서출판솔 200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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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가 생각이 들 만큼 적나라한 책이다. 마치 마음속에 조용히 감춰두었던 감정을 나도 모르게 들켜버린 기분. 내용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인 헨릭과 콘라드가 한 여인을 두고 겪는 이야기. 물론, 여느 소설들처럼 치정싸움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헨릭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감정들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내용 자체보다도 헨릭의 감정 변화에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책은 결국 헨릭이 콘라드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콘라드의 대답보다도 헨릭이 덜질 질문이 무엇인지 더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가 그 질문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씩 밟아나간다. 왜 그는 '그것이' 궁금했을까. 책을 덮으면서 든 유일한 내 생각이었다.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 p. 155

 순간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그것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속이는 순간을 영원히 지속한다는 건 '속이는 것 자체가 진실'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내 삶도 그리고 지금의 내 환경도 모두 내 전 생애에 대한 답변이다. 삶은 버리는 게 불가능하다. 지나간 행동은 그저 쌓이기만 할 뿐 내 삶에서 단 1도 빼낼 수 없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나에게 답을 해준다. 하지만 그 정확한 답을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다. 아직은 그럴 용기도 그럴 재주도 없기에 간신히 외면하고 살고 있다. 언젠가 그런 용기가 생긴다면, 한 번쯤 - 두 번은 무리가 아닐가 싶다 - 똑바로 마주보고 싶다.


 현재의 자기와는 달라지고 싶은 동경, 그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인간의 심장을 불태우는 동경은 없지. - p. 172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쌓아온 결과물이다. 그걸 부정하는 순간 그리고 그것과 다른 삶을 동경하는 순간 지나온 세월동안 이뤄놓은 것들 위해 내가 동경하는 삶은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 물론, 그 시간이 동경하는 삶과 내 삶의 거리만큼 괴로운건 당연하다. 차라리 쌓아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나아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지금까지 살던데로 동경하던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삶을 쌓아가고 그걸 그저 바라만보는 건 쌓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동경하는 것도 전부다 괴로움으로 바뀐다. 심장이 타들어간다.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변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변경거리를 산 처럼 쌓아놓고 그 산을 바라보며 위로받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것 만큼 바보같은 게 있을가. 책을 덮으면서 이렇게 답답해본 게 얼마만인지... 헨릭은 마지막에 유모의 '편안해 졌나요?' 란 물음에 '그렇네' 라는 답변을 했다. 과연 그는 편안해 졌을까. 아니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답답함을 그 역시 가슴안에 영원히 품고 살아갈 것인가.


[그외 좋은 글귀]

상대방에게 그렇게 병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는 사람의 솔직함은 본질적인 것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지. - p. 209

 자네는 그런 일을 할 만큼 강한 위인이 못 되네. 아니면 절호의 기회를 놓쳤든지. 이제 자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네.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일세. -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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