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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즐거움
보통의 존재(이석원 作) - 엉뚱한 사람의 이상한 생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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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은 데 마음에 드는 책이 없을 때는 종종 표지를 보고 선택하곤 한다. 검정색의 하드커버. 딱 내 취향이었다. 마치 알랭드 보통을 연상시키는 책 제목도 한 몫 했다. 그때까지는 물론 이석원이 언니네이발관의 보컬이란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일단, 책을 펼치고 몇 장 넘기지 않았음에도 이 책을 (적어도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물론 내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글 내용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난 거 같은 느낌이랄까. 좋게 말하면 엉뚱했고,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그의 말들이 더 가슴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한 권은 다 읽어버리는 꽤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다.
감정이 글을 압도하게 되면 정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담아낼 수 없게 된다. - p. 368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처음과 끝 그리고 그 과정을 머리속에 미리 그려놓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한자 한자 옮겨 적지는 못한다. 내가 무슨 전문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가 지망생도 아니기에 글 쓰는 것 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끔 글을 쓰는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는 그런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한 줄 한 줄은 그 의미를 갖고 있으나 그 문장들이 이어지는 순간 '아무말 대잔치'가 되버리는 순간. 그런 순간은 언제나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척추에서 나오는 생각을 그대로 손가락에 옮길 때다.
물론, 글을 쓰는 당시에는 일필휘지로 막힘없이 써나가는 통에 전혀 그런 걸 느끼지 못하지만 다시 한 번 내 글을 읽어볼 때면 글을 쓴 내 자신조차도 무슨 내용인지 당췌 알아보기가 힘들다. 굳이 절제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정도는 담아낼 수 있는 수준은 되야 하지 않겠나 싶다.
너네는 좋겠다. 그렇게 급한 일, 중요한 일, 가치 있는 일이 있어서. 그렇게 미친 듯이 가야 할 곳이 있어서. - p. 25
청소년들이여, 꿈이 없다고 고민하자 마라. 그럼 관객이 되면 되니까. 그뿐이다. - p. 38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돈 많은 백수'입니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거 같다. 억지로 되고 싶지도 않은 사람/직업을 대상으로 날 투영하고 그 투영된 모습으로 바라봐주길 원하며 남들에게 말하는 시기는 지나간 거 같다. 물론, '정말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 자체에는 가끔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하지만 꿈이 없다는 거 자체는 자랑도 그렇다고 창피해야될 일도 아니다. 그냥,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살만한 것으로 생각하자. 갖고자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버리고자 한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닌 듯 싶으니 말이다.
집에서 누리는 행동의 자유란 사생활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벌거벗은 맨몸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평소 촌스럽다는 이유로 선택받지 못하던 티도 맘 편히 입을 수 있다. - p. 32
난 집이 좋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치유받는 곳이며 누구도 모르는 내 모습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다 큰아들은 그렇게 칠순 노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어른이 아니었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에게 다음부터 다시는 병원에 혼자 가지 마시라 당부하는 것뿐이었다. 그 말을 건네는 나의 입이 부끄러웠다. - p. 138
이제 '내일모레도 아닌 내일' 마흔이 되는데다 효심도 깊은 내가 왜 그러는 걸까.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사실 엉뚱한 말을 하는 엄마보다도 내가 더 이해가 안 간다. 아니라고 말하면 될 것을, 좋게 설명하면 될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그토록 예의 바르게 대하면서 정작 내 어머니한테만 이러는 이유를 나도 정말 모르겠다. - p. 223
어렸을 때 부터 유난히 나를 의지하시던 어머니가 나이를 들수록 조금은 더 의지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게 해주시는 것들에 비하면 나에게 원하는(원한다는 표현도 적절치 못하다. 그저 바라는...?) 것들은 사소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꺼이 하는 것들은 그 안에서도 얼마되지 않는다. 바빠서 혹은 힘들어서. 무엇이 그리 바쁘고 왜 그리 힘들까. 나이가 들 수록 마음'만' 쓰인다.
죽은 이후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생을 마친 후 나의 생을 장식했던 모든 출연진들이 나타나 축하의 꽃다발과 함께 박수를 치며 나를 격려하는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
" 모든 게 쇼였어. "
남들보다 유난히 약한 멘탈 때문에 완전히 집안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종종있다. 그럴때면 내가 겪는 모든 일은 누군가의 각본이고, 그저 한 순간의 쇼로 끝나버렸으면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고민하고 아파했던 일들이 허무하겠지만 완전히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모든 게 쇼로 끝나버렸으면... 아주 가끔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도대체 뭘 읽은거지.' 란 생각을 했다. 산문집인지 시집인지 소설인지... 혹은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본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책을 덮고나서 아내에게 들은 '언니네이발관' 소식은 그 충격을 배가 시키기에 충분했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생각을 따라가느라 다 읽고 나니 살짝 뇌가 지친 기분까지 들었다.
자신의 고요하지 않은 삶에 대해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살짝 각오하고 이 책을 읽어볼 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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