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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작고 크다(루시드 폴 作) - 소소하나 찬란한 삶에 대한 이야기 본문

책 이야기

모든 삶은, 작고 크다(루시드 폴 作) - 소소하나 찬란한 삶에 대한 이야기

추락천사 2017. 12. 12.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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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작고 크다
국내도서
저자 : 루시드폴
출판 : 예담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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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나에게 있어서 가수라하면 서태지가 전부였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랐으며, 그 외의 음악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나의 취향 아닌 취향은 결혼을 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흔히 말하는 인디밴드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으며, 서울재즈페스티벌이나 그랜드민트페스티벌같은 공연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나의 취향변화와 함께 다가온 루시드 폴. 처음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건 음악 보다는 특이한 그의 이력이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사람이 그동안 이루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결졍했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그가 선택한 기획사가 안테나뮤직이란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런 놀라움으로 만난 그의 음악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아니 그 동안 들었던 노래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노래라기 보다는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잔잔한 멜로디에 그저 얹혀 있는 그의 가사들. 노래하는 데 무리가 없어보였고 듣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그런 그가 8집음반과 함께 책을 출판했다. 그의 노래와 거의 완벽하리만큼 어울리는 그의 책은 마찬가지로 읽기에 무리가 없었으며 마치 그가 옆에와서 이야기해주는 것 처럼 잔잔하게 흘러갔다.


 우리의 농사를 하면서, 처음에 나는 각자의 생각이 다른 것이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보이지 않던 큼은 커져만 갔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친환경 농법을 고집할 수는 없다는  친구의 입장은 일리가 있었는데, 어쩌면 나는 밭농사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 (중략) ... 둔감하자면 얼마든지 둔감할 수 있겠지만,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 내키치 않는 일이 끝없이 생길수 있겠다 싶었다. - p. 77

 살아가면서 수 없이 부닥치는 일이다. 처음에는 나와 생각이 같아서 모였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어느샌가 서로의 다름이 절실히 느껴질때가 많다. 그저 만남 자체에서도 이런 다름이 존재하는 데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는 그 다름이 피부로 가깝게 다가온다. 물론 그런 다름이 같은 목적을 향해 다가가는 방법의 차이라면 어느정도 메꿀 수 있지만 그 목적 자체가 다르다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거리가 벌어지는 원처럼 시간은 그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게 되버린다. 나에게도 몇년 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수 십년을 바왔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과 같음을 충분히 바왔다고 자부했으나 막상 함께 일을 도모하려고 하니 바라보는 방향의 다름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었다. 함께 하고 즐기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무언가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각자가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지칠때까지 공유하고 그 목적이 하나로 모일때까지 절대 함께 일을 도모해서는 안된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잡는 순간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꽃이 온다'라는 말이다. 나의 농사 선생님께서 처음 내게, '꽃이 왔어?'라고 물었던 날, 그 짧은 말의 울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 p. 144

 말의 울림이 특별히 좋은 단어 혹은 동사들이 있다. 같은 의미를 지녔지만 그 단어 자체가 갔는 울림 덕분에 더 마음에 다가오는 단어들. 나에게 있어서는 여보 혹은 와이프 보다는 아내가 더 가깝게 느껴져서 말이 아닌 글로 쓸때는 나도 모르게 아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 (말로 표현하는 아내는 조금은 낯간지러우니까...)

 그러고보면 '꽃이 왔다'라는 표현도 그 울림과 의미가 참 기분좋게 다가온다. 꽃이 와서 내 옆에 앉아 있는 걸 상상해보면 그 따뜻한 온도와 향긋한 향기도 어느새 함께 어울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시작된 상상은 금새 '봄'이란 녀석도 함께 데리고 온다. 마지막으로 포근한 이불까지 나타나고 나면 포근한 혹은 나른한 봄 기운이 주위에 가득하게 된다. 단지 꽃이 왔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 울림은 내 주위를 체우고도 남는다. 


 거실에 누워서 새로산 카페트위에 누워 색색깔로 꾸며논 작은 베개를 가슴팍과 카페트 사이에 놓고 루시드 폴의 8집 음악을 들으며 그의 책을 읽다보니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제주도에서 보내는 그의 삶이 부러운 건 아마도 자신의 삶은 소소하지만 찬란하다고 믿는 그의 마음이 전해진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삶도 소소하나 찬란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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