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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기억

광교산 등산, 여름 하늘아래 느낄 수 있는 상쾌함

추락천사 2017. 8. 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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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7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으로 남미여행을 떠났다. 덕분에 최악의 고온을 기록한 대한민국의 여름의 기억은 8월 한달로 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 해 7월은 이직을 계획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외국계 기업처럼 한 달 동안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내리쬐는 7월의 태양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매일 에어컨을 몇시간씩 작동시켜도 30평 남짓한 공간을 한 발작만 벗어나면 고온/고습한 공기가 밑도 끝도 없이 주위를 뚤러쌌다.

 아내를 직장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쩌죽을 수 있다는 생각 + 숲 속은 왠지 모르게 시원할 거 같다는 기대감 + 너무 더워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함 이 겹쳐져서 그 길로 바로 광교산으로 향했다. 어차피 더운 거 숲 속의 상쾌함이라도 느낄 수 있길 기대하면서...

 광교산을 오르는 코스는 주로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다슬기화장실에서 시작되는 코스. 이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정상까지 가장 무난해 보이는 루트로 보였기에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나라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난 이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등산이란 흔히 얘기하는 트레킹이었다는 것을. 등산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광교산은 동네 뒷산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남미의 산이나 광교산이나 올라가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산을 올라가기전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광교산은 광교산 입구를 제외하고는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다. 그건 이곳 다슬기화장실 코스(?)도 마찬가지. 하지만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종점농원이란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조건으로 주차를 지원해주니 차를 몰고 가시는 분들께서는 참고하길 바란다. 입구에 주차하고 올라오는 버스비를 생각하면 6000원 정도의 한끼 식사가 그리 부담되지는 않아 보인다.

 트래킹을 가장한 광교산 등산길의 첫 인상. 마치 느긋한 산책길인마냥 선선한 바람과 햇빛이 차단된 숲길 그리고 옆에 흐르는 냇물 덕분에 떨어진 온도까지 갖추고 있었다.

 참고로 이날의 등산파트너 음악은 '검정치마' 였다. 상쾌한 공기에 좋은 음악까지 있으니 발걸음이 한층 더 가벼워졌다.

 좀 더 걷다보니 이곳의 경치를 벗삼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무리를 여럿 볼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이런 공간에서 여름을 잊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한 10여분을 걷기 시작하면 슬슬 오르막길이 나온다. 그것도 비포장 or 계단. 무릎이 별로 좋지 않은 나에게 있어서 이런 길은 정말 쥐약이다. 하지만 혼자 오르는 산행길의 장점은 바로 나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5분 마다 쉬든, 1분 마다 쉬든, 중간에 냇갈에 들려서 선선한 공기안에서 한 숨 쪽잠을 취하든 누구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말 그대로 쉬엄쉬엄.

 얼음물과 와사비맛 아몬드에 의지해서 첫 번째 고지(?)인 절터약수터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한 4~50분정도 걸어가다보니 슬슬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에 보이는 계단이 나타난다면 일단 1단계는 성공한 셈.

 아무리 내 속도대로 오른 등산이었지만 한 여름 등산이 상쾌하기만 할리는 만무했다. 비오듯 내리는 땀을 안고 올라간 약수터는 ' 그냥 여기서 내려가라. ' 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한번 나의 바보 같은 선택. 이왕 여기까지 온거 500미터 밖에 안되지만 올라가 봅시다.

 그 당시의 나에게 가서 말해주고 싶다. ' 너 무릎 나간다. 그냥 내려가라. '

 절터약수터를 지나 억새밭까지 올라간 뒤 바로 시루봉까지 직행했다. 분명 엄청나게 가파르거나 험한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르막만 나오니까 숨이 가파오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췌 1000미터씩 올라가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아... 힘들어.'

 그나마 유일한 위안은 이 더운 여름 날씨속에서도 선선한 바람이 불고 햇볓을 가려줄 수 있는 숲 속에 있다는 것 정도. 오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과 함께 왔다면 들어가서 놀고 싶은 냇물도 바로 옆에서 계속 이어져서 아주 살짝 사람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너무 쉬엄쉬엄 걸었는지 2시간이 다되서야 시루봉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면 혼자서 등산을 한 것도, 뭔가 봉(?)에 올라본 것도 거의 처음이지 않을 가 싶다. 왜지 모를 성취감도 0.5정도 느껴졌다.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광교산 근처의 풍경이 전체 다 보였을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등산이 그리 나쁜 취미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힘들고 고되긴 하다.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건 좀 아쉬움이 있어서 돌아가더라도 토끼재쪽 루트를 택했다.
토끼재라고 해서 뭔가 어마어마한 공간을 생각했는데 이건 그냥 손바닥만한 쉼터였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에 나타난 계단. 바로 이 순간부터 무릎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 꽤 많은 거리가 남았는데...

 절둑거리면서 저 계단을 내려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굴러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 한 손은 난간을 잡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은 위안을 삼자면, 느리게 내려간 덕분에 올라갈 때 보다 더 많이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 하나하나의 이름은 모르지만 적어도 그 나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자라왔는지... 길가에 어떤 꽃들이 자라고 있는지 모습으로, 향기로 그리고 촉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바로 어떤 꽃인지 알 수 있는 어플이 있다고 했는데, 다음에 등산할 때는 한번 사용해봐야겠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주차한 가게에서 콩국수를 주문했다. 역시 여름에는 콩국수. 너무 지쳐서였는지 혹은 배가 고파서였는지는 모르지만 6000원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맛은 충분히 보여줬다.

 일반적으로 명시된 등산 시간에 비해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 느낌이었다. 여름에 등산을 한다는 게 중간 중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한번 내 속도대로 새로운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한 여름 등산이 힘들고 짜증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추천코스]
다슬기화장실 -> 절터약숙터 -> 시루봉 -> 토기재  -> 다슬기화장실
약 2시간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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