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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Day 28 -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심을 거닐다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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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Day 28 -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심을 거닐다 (1)

추락천사 2017. 11. 2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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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는 내내 날씨가 흐린날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을 걸어다니기로 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밖으로 나올 때 쯤에는 내린 흔적만 있을 뿐 비가 오지는 않았다.



 원래라면 이런 날씨에는 집 침대에 누워서 밍기적 거리다가 느즈막히 일어나 TV를 보며 '오늘 뭐하지?'라고 생각만 하다가 하루를 보내는 게 제맛인데...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심을 걸어다니다가 저녁에는 공연까지 보려다녀야 하기 때문에 밍기적 거릴 틈 따위는 없었다.

 헬맷처럼 자라버린 머리카락. 그렇다고 여기에서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한국에 돌아가기 전 까지는 이렇게 헬맷을 쓰고 다녀야만 한다. 얼굴도 붓고 머리도 붓고... 동글해져 버린 얼굴.



 길가다 발견한 군것질 거리. 땅콩을 달달한 꿀? 설탕?에 넣고 계속 구워서 만든 모양인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보일 때마다 하나씩 사곤 했다. 왠지 명동에서 팔면 잘 팔릴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녀석. 설마 벌써 팔고 있는 건 아니겠지?



 비가와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건물의 일조권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일직선 배열과 마치 일부러 그런듯 키를 맞춘 덕분에 어디를 봐도 영화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거기에 비까지 내렸던지라 훨씬 더 걷기 좋은 모습의 거리가 됐다. 물론, 내가 걷고 있는 데 비가 내리는 건 사양이지만...



 거리를 걷다가 만난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인 '오벨리스크'. 도시의 4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졌다는 것 외에도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지금까지도 충분히 해내고 있는 도시의 상징물이다. 때로는 도시의 자랑으로 어떤 때는 시민을 억압하는 상징으로, 지금은 시민들이 모여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시민광장같은 느낌인건가? 이렇게까지 도시의 중심에 잘 자리잡은 조형물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도로, 건물 심지어 거리의 전체적인 모습까지 모두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오벨리스크 근처에 있는 Ticket box에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하는 공연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거의 반 값에 표를 구매할 수 있으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은 티켓을 오픈하는 10시까지 이곳으로 가서 표를 예매하도록 하자. 우리가 예매한 공연은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urta)'라는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볼거리가 풍성한 공연이기 때문에 놓치지 말고 보도록 하자.



 티켓을 예매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두 번째 목적지는 바로 산텔모 시장(Mercado de San Telmo). 예술가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다양한 예술품과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과거에는 집세가 저렴해서 수 많은 작업실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는 작업실보다는 부띠끄가 많아진 게 흠이라면 흠이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가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다들 근처 건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의 한 복판에서 달콤한 초코바를 팔고 계시는 아저씨. 비에 물건들이 젖을까봐 이동하지도 못하고 계시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마침 배도 고파서 오늘의 첫 간식은 초코바로 결정했다.



당이 차오른다.


 음악소리에 이끌려 걸어간 곳에는 멋진 노신사가 양복을 입고 오늘의 탱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나타난 숙녀분과 멋진 탱코를 추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 탱코의 본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미 계획해두긴 했지만 갑자기 떠나기 전 꼭 탱고 공연을 보고 가리라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지는 순간이었다.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그냥 우산을 쓰고 걸어다니기로 했다. 사실 우비가 있으면 더 편했을거란 생각을 했지만 오락가락 하는 날씨를 종잡을 수 없어서... 빗줄기가 거세지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걷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제발 이 정도로만 비가 오고 말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런 생각을 가진지 얼마 지나지않아 아쉽게도 더 이상 걷기가 힘들 정도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가판에 나와있던 상인들도 철수가 시작해서 '아... 오늘은 망한거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비를 피해 건물안으로 들어와 거리를 바라보니 이 거리와 비가 또 꽤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그냥 그 장면을 보기만해도 하나의 그림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다. 이대로 카페에 앉아 빗소리를 음악삼아 시간을 보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비는 좀 그쳐라.


 다행히 비는 좀 사그라 들었지만 이미 가판의 상인들은 반 이상이 철수하고 난 뒤었다. 이럴때는 초등학교 때 배운 가르침대로 '이미 반이나 떠난 게 아니라 아직 반이나 남았다.'라고 생각해야 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 안에 가득찬 예술품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가 그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올 때 만큼 시끌벅적한 건 아니라 어디를 더 구경할까 하고 돌아다녔는데, 마침 실내에 있는 앤틱샵을 발견했다. 노란색 조명과 멋드러진 앤틱 제품들 그리고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까지 합쳐져서 이곳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멋진 샹들리에 조명과 처음보는 가죽 제품들. 거기에 유리공예 작품들까지. 역시 아름다움은 지쳤던 사람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 거 같다.  좀 전까지 아쉬웠던 마음이 이곳에 와서 풀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안의 크기가 넓어서 구경하는 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 물론, 실제 크기보다도 그 분위기에 취해서 더 크게 느껴진 부분도 없지않아 있는 듯 하지만...



 한 참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처음의 위치에 돌아왔다. 비는 이미 그쳤으며 사라졌던 가판 역시 하나 둘 씩 제자리르 찾아가기 시작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시장을 보고 있으니 다시 한 바퀴 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음 스케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 했다.



 비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것도 산텔모 시장에 내리는 비 만큼은 즐기며 걸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건 비내리는 이곳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만나게 될 인연들도 비와 잘 어룰렸으면 하는 건 내 욕심일 수 있겠지만 왠지 이 도시 자체와 비는 잘 어울릴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비가 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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