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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훗카이도] Day 07 - 마루미 커피(MARUMI COFFEE, 丸美珈琲店), 향과 맛으로 기억된느 공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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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훗카이도] Day 07 - 마루미 커피(MARUMI COFFEE, 丸美珈琲店), 향과 맛으로 기억된느 공간

추락천사 2018. 10.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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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잠시 휴식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오전에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짐만 맡기고 바로 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제대로 쉬지도 못해서 그런지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평소라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침대에 앉아 맥주를 한잔하고 TV를 보면서 쉬었겠지만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여행이 왠지 모르게 아쉬워져만 갔다. 매번 여행을 다닐때면 피곤하기도하고 귀찮기도 한데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마냥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침대 하나에 책상과 tv 밖에 없는 공간을 보다보니 옛날 고시원에 잠시 머물던 때가 생각이 난다. 물론, 이것보다 훨씬 더 작고 허름한 곳이었지만 그 안에서 한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곤한 몸을 뉘이고 충전하듯 잠만자던 그 때. 지금도 작은 방안에 컴퓨터와 나 그리고 스탠드만 있는 서재에 앉아있을 때면 비슷한 기분이 든다. 아, 눕고 싶다.

 이대로 침대에 앉으면 바로 잠들게 뻔하기 때문에 그냥 짐만 올려놓고 바로 1층으로 내려왔다. 



 한 블럭만 넘어가면 사람들로 가득찬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거리에는 거의 사람들이 없었다. 작고 음산한 골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뭔가 으스스했다. 보이기로는 밤 10시가 넘은 시간 같지만 이제 겨우 6시가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리 싫지는 않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말소리보다는 건물 사이로 이따끔 들리는 바람소리나 조용히 지나가는 차 소리가 더 정겹게 들린다. 더 멀리 밝게 빛나는 거리보다는 그 빛 뒤에 약간은 어두운 골목의 분위기가 더 걷기에 부담이 없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 가고 싶은 목적지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여행길이다.



 숙소에서 10여분 쯤 걷다보니 어느새 조용히 커피 한잔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이곳에 도착하자 든 생각은 '저녁에 오길 잘했다' 였다. 달빛 외에는 가게의 조명밖에 없는 이 공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즐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마음 가짐이라 생각하는데, 이미 이 곳은 나를 '가장 맛있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줬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면 벽에 걸려있는 많은 상장 혹은 certification 이 눈에 띈다. 그 내용을 모두 알 수 없어서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 감정사, 커피 소물리에, 원두 감정사, 일본 바리스타 챔피언십 심사위원등 커피 안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인정받았을 법한 결과물들 이었다. 상을 많이 받은 게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길을 걸어왔을 성실함과 노력 만큼은 엿볼 수 있기에 커피를 주문하기 전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눈 앞에서 보고 고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저 유리병안에 있는 커피들은 향 까지 맡아볼 수 있으니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 혹은 커피에 관심이 많지만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몰라 커피를 고르는 거 자체가 곤욕인 이에겐 이보다 행복한 공간이 있을 가 싶다. 헌데 이게 종류가 또 워낙 많다 보니까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은 향을 맡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취향을 찾는 거 자체가 고문이기도 하다. 이럴 때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설명을 요청하면 자세히 설명해주실 거 같지만... 아쉽게도 일본어는 히라가나도 제대로 못쓰는 입장이라 그건 실패. 그저 나의 코를 밑고 선택을 시작했다.

 



 내 선택은 'El Salvador 2017 8위 입상(이름은... 알 수가 없음)'. 아내의 선택은 'Guatemala Esperanza Pacamara'. 둘 다 처음마셔보는 커피였던지라 향으로 느꼈던 것과 비교해서 어떤 맛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걸릴 듯 하여, 이제서야 조금씩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커피 숍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안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복도식 카페라서 인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앙 홀 같은 공간이 없었다. 사람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만약 이 안이 꽉 찾 더라도 요즘 커피숍 처럼 시장같은 분위기는 나오지 않을 듯 싶었다. 그저 조용한 음악소리와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향기 정도만이 공간을 체우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찻잔 혹은 그릇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뭔가 정갈하지 못하고 그릇 자체만으로도 너무 튀는 모양이라 집안 전체적인 분위기를 둥둥 뜨게 만들 거 같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모양의 그릇이 주는 매력이 뭔지 약간 알 거 같은 기분이다. 너무 화려한 건 여전히 별로지만 이 정도의 차분한 모양이나, 금테로 포인트를 준 다기들은 하나 쯤 셋트로 구매해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이렇게 기다리는 사이 어느세 커피가 예쁜 잔에 담겨 나왔다.



 일본 커피숍이 모두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하게 이렇게 우유가 잔에 담겨져 나왔다. 물론, 이걸 타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이렇게 나오니 '타마셔야 되나?' 라고 살짝 망설였던 건 사실이다. 한 잔 입에 머금고나니 원두의 향에서 느껴지는 시큼한 산미가 그대로 느껴졌다. 특이한 건 고온에서 강하게 느껴졌던 산미가 점점 식으면서 나중에는 꽤나 부드러운 맛을 준다는 점이었다. 끝에서 느껴지는 초콜릿 맛까지 더해지니 왜 이 커피가 유명한지 아주 조금 이해가 가긴 했다. 물론 이 커피 만큼 맛있으면서도 저렴한 커피들도 있었겠지만 그런 진흙속의 진주를 찾을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고 정보가 많지도 않기에 남들이 인정하고 높이 평가받은 커피를 조금은 비싸게 주고 마시는 걸로 수고를 줄이기로 했다. 



 다 마시고 나니, 오래간만에 만나는 종이 영수증. 너 오래간만에 보니 진짜 반갑구나. 그러고보면 일본은 분명 우리보다 많은 부분이 발전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아직도 많은 부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아날로그 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곤 하다. 예전, 일본에 혼자 놀라왔을 때도 파출소에서 '손으로' 자신이 의뢰할 일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싫은 건 아니다. 그냥 신기할 뿐.

 눈으로 보는 것보다 향으로 그리고 맛으로 기억하는 게 더 오래 간다고들 얘기한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향과 맛을 기억속에 남긴 장소는 조금만 기억을 더듬으면 그 장소의 추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삿포로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두고 싶으신 분들은 늦은 저녁 이곳에 들러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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