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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훗카이도] Day 06 - 지옥계곡(지고쿠다니) - 지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온한 풍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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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훗카이도] Day 06 - 지옥계곡(지고쿠다니) - 지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온한 풍경

추락천사 2018. 9. 2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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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키노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온천으로 몸이 풀린 덕분인지 아침의 몸 상태가 한결 가벼웠다. 이제는 다시 오기 힘들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닝 온천을 한번 더 즐기기로 하고 부랴부랴 야외 온천으로 향했다. 어젯밤에도 혼자 온천을 즐겼는데 역시나 오늘 아침 온천도 혼자 즐길 수 있는 호사를 부렸다. 운이 좋았던 듯...


 

 아침식사를 예약해뒀기 때문에 이 호사를 마냥 즐길수만은 없었다. 30여분 남짓 지나갈 때쯤 식사시간이 되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온천을 빠져나왔다. 아직 이곳 숙소를 check out 한 건 아니지만 더 이상 온천에 몸 담궈볼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자꾸만 뒤돌아보게됐다. 가능하다면 부모님들을 모시고 한 번 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침식사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푸짐했지만 메뉴 자체는 담배한 편이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기에는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일식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그 이유가 맛도 있지만 일식이 보여주는 이 정갈한 상차임이 마음에 드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한해지는 식탁. 만약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해준다면 맛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이렇게 편안해 질 수 있는 상차림을 해주고 싶다. 



 어제 저녁식사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좋은 풍경속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매일 식사를 할 때면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10여분 만에 급하게 배를 체우고 일어나기만을 반복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속에서 몇 끼를 먹다보니 음식의 맛과 향 그리고 주변의 풍경까지 하나씩 눈에 담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먹는다는 게 단순히 뱃속에 음식물을 체우는 행위가 아니라 분명한 내 삶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식사 시간'을 참으로 의미없이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만큼은 '식사'를 단순히 먹는 게 아닌 즐기는 시간으로 보내봐야겠다. 나를 위해서...

 아침부터 든든하게 한 끼를 먹었으니 슬슬 오늘 하루의 일정을 시작해야 했다. 가장 먼저 시간한 건 숙소 옮기기. 이곳 타키노야나 앞으로 옮길 하나유라 온천 중 한 곳에서 2박을 머물 예정이었으나 너무나 인기있는 시즌이었던지라 2박이 비어있는 숙소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각각 1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예약할 당시에는 1박을 하고 다시 옮기는 수고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막상 옮기고 보니 한 번에 두 곳의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된거 같아 그리 후회되는 선택은 아니게 되었다. 숙소를 옮기고 나서도 아직 check in 시간이 되질 않았기에 빈 시간동안에는 노보리베츠 주변을 둘러보면서 점심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사실, 노보리베츠 자체가 온천 관광을 목적으로 조성된 지역이기 때문에 근처에 특별히 구경할만한 장소가 없는 편이다. 그나마 이곳 온천의 발상지와 같은 계곡을 지옥 계곡(지고쿠다니)라고 부르며 만들어놓은 공원이 거의 유일한 관광지이다. 전부 다 돌아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니 시간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한 번쯤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리 곳곳에 이런 이정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대부분이 호텔의 이름이다. 갈 만한곳이 얼마나 적은지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오른쪽 아래 두번째에 적혀있는 Jigokudani-Oyunuma (지고쿠다니-오유누마), 즉 지옥계곡 - 오유누마 호수 방향이다. 굳이 이 표시가 아니더라도 중간 중간에 이정표가 잘 되어있으니 길 잃을 걱정은 하지 말고 그냥 발이 닿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오늘 반나절 가이드를 맡은 김보희양

여느때처럼, 목표물을 향해 직진하기 보다는

발걸음 향하는대로

마치 나그네처럼

정처없이 떠도는 가이드입니다.



지옥계곡을 가는 도중 나오는 절

어떤 절인지

누구를 위한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왠지 발걸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저 높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은

몇 개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계단 아래의 세상과는 단절된 것 마냥

자신만의 시간안에 갇혀있는 이곳

시간만 허락된다면

저 작은 건물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은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가 이곳 전체를 감싸고 있다.

별 생각없이 향한 곳에서

이런 장소를 만나게 되면

괜히 마음이 더 뭉클해진다.

약간의 행운과 그걸 만나게 된 인연.



이렇게 만난 행운에 감사하며

작은 사원을 둘러 본 뒤

다시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이 녀석들을 만났다면 지옥의 입구(?)에 제대로 도착했다는 소리다. 90년대의 놀이동산에서나 만날 법한 수준의 조각들 덕분에 뭔가 더 도깨비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관리되지 못한 상처들은 그 세월을 느끼게 해주고, 세련되지 못한 칠과 형상은 오래된 도깨비의 모습에 더 가깝게 보인다. 도깨비를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이것보다 더 매끈하고 괴기스러운 모습이라면 덜 도깨비스럽지 않을가 짐작해 본다. 꿈보다 해몽인가.


오 예! 씐납니다. 씐나!



 입구에 도착하면 마치 입장권을 끊고 곤도라를 타야될 거 같은 풍경이 나타나게 된다. 당황하지 말고 그냥 직진하다. 특별히 입장료를 내는 것도 아니고 곤도라를 타고 올라갈 설비도 없으니 말이다. 그냥 걷고 또 걷고 걸으면 된다. 사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내가 어디까지 구경할지만 정하면 된다. 온천을 즐기는 게 더 좋고, 높이 올라가는 것도 지겨우니 그냥 지옥 계곡만 구경하다 말거면 30~1시간 정도의 코스로 한 바퀴 둘러보면 되고, 오유누마 호수까지 가볼 생각이라면 2시간 반정도 생각하고 좀 더 걸을 각오를 다지면 그만이다. 아내와 나는 이왕 온 거 볼 수 있는 건 다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지옥 계곡 + 오유누마 호수 코스를 택했다.



 그 첫 번째 코스는 '덴센 연못'. 사전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어떤 곳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그 초입에서 바라본 웅장함은 꽤나 기대감을 높일만한 연출 수준이었다. 유황 덕분에 새빨갛게 변해버린 토양과 토양 주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생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지대가 합쳐지니 지옥이라고 하기에는 과할 수 있으나 살기좋은 동네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덴센 연못을 찾아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런 풍경들을 지척에서 만날 수 있으니

너무 앞만 보고 직진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지옥에 온 것도 서러운데

굳이 목표점까지 최단시간으로

달릴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천천히 갑시다. 천천히.



덴센 연못을 만나기 직전.

이 정도 연출을 해놓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응?


 연못에 도착해서는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가로 새로 2미터 남짓하는 펜스 안에 여염집 규수마냥 귀엽게 자리잡은 저 웅덩이가 지옥 계곡의 초입을 담당하는 덴센 연못일 거라곤 도착하기 직전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가득한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라면 이 주변 전체를 덴센 연못으로 얘기하는 건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 잠시 심란했지만 '그래, 내가 걸어온 주변 전체가 다 덴센 연못이겠지.' 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다음 장소로 이동을 시작했다.



내가 살짝 허무한 건 그냥 기분 탓일거야.


 뭐, 덴센 연못이 살짝 마음을 상하게 했지만 그 주변이 그려주는 풍경 만큼은 장관이었으니 그걸로 위로하는 셈 치고 다시 열심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남미 여행 이후로 오르막에 대해서는 꽤나 자신이 생겼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눈 길의 오르막은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미끄러지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무릎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왕 내딘 발걸음 끝은 보고오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올라가보자.



오르고



또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에 눈 덮힌 길 때문에 조금은 지쳤지만 언제나 그렇듯 막상 이렇게 도착하고 나면 눈 앞에 펼쳐진 탁 트인 전경이 대부분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남미에서의 69호수는 제외하고...). 이곳도 마찬가지로 주위의 눈과 자욱한 안개 그리고 무엇도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함까지, 올라온 피로를 풀어주는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지옥 계곡의 몽환적인 느낌이 이곳 오유누마 호수의 전경보다는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물과 앞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연기를 손이 닿을 법한 거리에서 겪는 게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진 듯 하다.  만약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까지 올라와서 호수의 전경을 보는 걸 추천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지옥 계곡의 풍경을 조금은 느리게 눈 속에 가득 담고 오는 걸 추천하고 싶다.


내려오는 게 올라가는 것 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냥 와다다다! 뛰어 내려온다.


무사히 내려왔다면 기념으로 초코우유 한잔 정도.


온천 하나만으로 이런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일본이란 나라가 참으로 신기하고 부럽다. 아무것도 아닌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서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했을까. 그 덕분에 그저 그런 산책길이 될 법한 곳에 의미를 찾아가며 즐거워하는 관광객도 생기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 않을가 싶다. 노보리베츠에서 만난 잠깐이지만 즐거운 산책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온천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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