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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 말과 글이 보여주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 본문

책 이야기

언어의 온도 - 말과 글이 보여주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

추락천사 2017. 11. 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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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면 그 텍스트만 눈에 들어올 뿐 전체적인 글이 머리속에 남지 않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한자 한자 가슴에 박히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다 읽고나서도 마치 타임리프한 것처럼 공허한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조금 과장을 더해서 가슴이 울리고 생각이 많아진다. 쉽게 말해 마음이 동한다. 사람이 좋은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처럼 책을 읽으면서도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 정확히 설명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그 중간에 있는 책은 별로 없다. 가슴에 남거나 혹은 다시 책장속에 갇혀 만날일이 없거나.

 온도는 상대적이다. 체온와 같은 물에 손을 담궈도 내가 겨울속에 있는지 여름속에 있는지 정확히 구분해준다. 이 책의 글들은 그렇기에 겨울속에 있는 사람들에겐 따뜻함을 여름속에 있는 이에겐 선선한 위로를 주는 글들로 가득했다.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당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 p.69

 정해진 길이 없는 곳을 걸을 때 중요한 건 '솔직함'이 아닐까 싶다. 눈치와 코치에만 연연하다 재치 있는 결정을 내리기는커녕 삶을 그르치는 이들을 나는 수없이 봐 왔다. - p.94


 상대방의 온도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의 온도를 그대로 전달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너무 고려한 나머지 되지도 않는 고민만 하다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를 나 역시 많이 봐 왔다. 그저 봐 온 것뿐만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내가 하는 행동들의 팔할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는 너무 성급해서 혹은 내 마음이 급해서 그것도 아니면 내 생각이 맞다고 단정해서 상대방의 기분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내 말을 쏟아낼때가 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상대방은 여름날 땀내나는 남자아이가 자기 기분에 취해 안겨오는 것 처럼 마지못해 안아주지만 고약한 냄새 때문에 인상을 쓰는 것 처럼 곤란해하기 일수였다. 차라리 나를 내칠 수 있는 관계였다면 좋았으려만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듣는이가 '감히' 내 행동을 단죄하지 못할거란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에 상대방은 내 기분을 다 쏟아낼때까지 땀내를 견디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그것보다는 낫지만 눈치보다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 배려하는 척 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솔직함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만 잘못된 배려가 때로는 듣는이에겐 기만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내 '배려하는 척'을 눈치챈이에게 왜 내 마음도 몰라주냐고 때를 쓰기 시작하면 그 말은 점점 길을 잃기 시작한다. 위로에서 시작된 말이 감정을 타고 지 멋대로 흐르는 순간 말을 가시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필시 말은 오롯히 내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다. 누구도 내 성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내 머리를 가로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 책임은 온전히 내가 지어야 하는데, 뱉은 말에 의해 돌아오는 책임이 그저 서운할 뿐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상대방의 온도를 알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솔직함을 실어 말을 전하라고 얘기해주고 있다. 굳이 한 여름의 바람일 필요도 없으며 추운 겨울의 난노일 이유도 없다. 딱 그 사람의 체온정도만으로 다가가도 충분하다. 그 다음은 말이 아닌 마음의 몫이다.


 시작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때론 훨씬 더 중요하다. 당사자에게 알려지는 것과 당사자에게 알리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시작만큼 중요한 게 마무리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 p.208


 아이가 어렸을 땐 문장이 아닌 단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란 존재는 그 아이가 하는 말을 상황과 분위기로 대부분 눈치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상황과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된단 얘기가 된다. 아이가 교육을 받고 커감에 따라 점점 말은 글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하고, 주어 서술어를 포함한 문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때부터는 굳이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도 아이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때부터 대화가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문장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기준대로 상상하고 추측한다. 그 말의 시작이 좋거나 평범한 주제라면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불안하거나 안 좋은 이야기로 시작해 놓고 끝매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듣는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말하는 이의 마지막 마침표가 끝날때까지 그 괴로움은 멈추지 못한다. 

 이건 단순히 한 문장의 마무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그리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전달하는 것. 바로 그게 말의 마무리다. 그제서야 상대방도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생각을 조금씩 갈무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해야할 말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다. 난 아이가 아니며 상대방이 내 부모는 더더욱 아니다.


 책을 다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 한 챕터가 남았다. 아마 작가도 이 챕터의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써야할 가 많은 시간 고민했으리라.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이 기대되고 설레였다. 그의 오랜 성찰을 담은 마지막 문장은 그의 체온을 담은 것 처럼 적당한 온도가 느껴졌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 p.306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가끔 오늘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때가 있다. 분명 출근길의 숲 길은 가을이 왔다는 걸 말해주듯 울창했을 테고, 양재천의 갈대밭도 그 길을 걸으며 들었던 음악도 모두 아름다웠을텐데 말이다. 그 만큼 더 행복했거나 행복했던 걸 기억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던 하루였다는 뜻이다. 조금 전 가슴아팠다고 해서 지금의 행복을 마다할 필요는 없을텐데 작은 불행은 사람을 몹시 집중하게 만든다. 마치 그 불행이 달아다면 큰일이 날 것 마냥 조바심이 난다. 불행에 조바심이 나서 아름다움을 놓치는 게 참 바보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쉽지 않다. 그 만큼 지금 이순간이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건 조금 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집중시키는 불행이 없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내일 하루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딱 그 만큼만... 


[ 좋은 글귀 ]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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