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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이야기]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 인계동 수제맥주 본문

맥주 이야기/한국

[맥주이야기]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 인계동 수제맥주

추락천사 2018. 9. 3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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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주말에 되도록이면 집안에 콕 박혀서 나오지 않는 편이라, 기분도 조금 우울해지고 있는 거 같은 느낌에 아내와 저녁 산책을 나왔다. 원래 목적은 매콤한 쫄면과 만두를 먹으려고 인계동 한복판을 걷고 있었는데 때마침 10월 초까지 가게가 휴가였다. 목적도 없이 다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한 마디

" 어, 저기 수제 맥주집 있다. "

 내가 맥주에 관심이 많이 생긴걸 알고 아내도 역시 이런 수제 맥주집을 볼 때마다 나에게 알려주곤 한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도 뭐하고 인계동의 수제 맥주집을 하나쯤 뚫어놓고 싶은 마음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일단 가게 안으로 향했다.



 일단,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남다른 포스. 뭔가 음침한 동굴이나 주술사의 방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막상 이 장면을 보니 '칼리가리 박사'가 누군인지 알고싶어졌다. 가볍게 얘기하자면 그는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1910년작이자 동명의 영화 주인공이다. 내용상으로는 최면술을 이용해 예언을 시키고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악역을 맡고 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열린 결말로 끝마치게 되어 그가 진짜 악역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쉽지 않은 인물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의 이름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가 풍기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데는 성공항 듯 싶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분위기하며, 주문을 받는 Bar의 분위기까지 일반적인 Pub에 비해서는 무겁고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너무 어두울 수 있는 분위기를 음악을 통해 살짝 띄어주는 센스도 잊지 않은 듯 하다. 예전에 잠시 유행했던 칵테일바와 같이 너무 방방 뜨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와인이나 위스키를 판매하는 Bar 보다는 더 가벼운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 듯 싶다. 결과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분위기.



 꽤나 다양한 종류의 수제맥주를 판매하고 있지만 처음 와보는 곳이니 당연히 맥주 샘플러로 주문. Pale Ale, IPA, 바이젠, 밀맥주 그리고 스타우트까지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에 처음 방문하는 분들에게는 본인 입맛에 맞는 맥주를 찾기위해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주문하자마자 도착한 샘플러. 왼쪽부터 닥터 필굿(Pale Ale), 사브작 IPA, 바나나 화이트(바이젠), 윗 웻 웻(벨지안 화이트) 그리고 걸 스타우트(스타우트)까지. 각자의 특징을 보여주듯 색도 가지각색이었다. 이제 슬슬 마시기위해 준비하려던 찰나 함께 주문한 피자까지 도착.



 생각해보면 정말 오래간만에 매장에서 피자를 먹는 듯 하다. 한 동안 마트에서 판매하는 피자에 반해서 주로 집에서 먹곤 했는데, 역시 어떤 음식이든 이렇게 누군가 해주는(?)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듯 하다. 그걸 떠나서 이곳의 피자 만큼은 맥주 전문점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퀄리티가 높았다. 너무 짜지도 그렇다고 마냥 두껍게 만들어서 식감을 해치지도 않았으며 도우 위에 살짝 발려진 소스 역시 토핑과 치즈의 맛을 해치지 않을만큼만 적당히 발라져 있어서 먹는내내 거슬림이 없었다. 특히나 도우의 바삭거림까지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피자.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안주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자신있게 내놓은 맥주는 어느정도인지 슬슬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1. 닥터 필굿(Dr. Feel Good, Pale ale)

 : Pale ale 답게 기본적으로 홉 향을 강조하는 데 힘을 쓴 느낌이다. 마시기도 전에 향만 맡았을 뿐인데도 후각을 압도하는 향 때문에 기분이 상쾌해질 정도. 향에 가득한 과일향은 메뉴에 써있는 것 처럼 열대과일과 시트러스함이 가득했다. 보통은 초반에 강하게 느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마지막 한 목음까지 그 향을 머금고 있었다. 거품은 생각대로 부드러운 편이었고 탄산이 거의 없는 편이라 뒷 맛은 깔끔했다. 맥아의 단 맛도 느껴졌으나 이내 홉의 향과 맛 때문에 거의 다 가려지는 듯 하다. 


2. 사브작 IPA(Sabzak IPA)

 : 앞 서 닥터 필굿의 향에 압도된 후라 그런지 향은 그렇게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메뉴에 표현한 드링커블한 IPA가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IPA 특유의 바디감과 Pale ale에 비해서는 훨씬 더 홉과 몰트 그리고 효모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맛이 느껴졌다. 물론, 열대과일과 시트러스한 향과 맛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말이다. 마시고 나서도 혀 끝에 남는 여윤이 꽤나 길게 남아있는 편이라 다른 맥주와 함께 마시기 보다는 이 맥주는 홀로 즐기기에 더 적합하지 않을가 싶다. 


3. 바나나 화이트(Banana White)

 : 바이젠 맥주라고 이미 메뉴에 설명되어있기 때문에 효모에서 느껴지는 바나나와 정향은 어느 정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바나나를 너무 과하게 강조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 동안 바이젠 맥주를 많이 마신 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바나나 향이 강하게 나는 건 거의 처음 먹어보는 듯 하다. 눈 감고 마시면 비스킷이 생각날 정도의 강한 바나나 향 때문에 맥주 특유의 알싸함이 완전히 다 가려지는 느낌. 이 맥주를 양조할 때 가지고 있던 지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만약 효모의 특징만을 정면으로 내세운 거라면 성공한 듯 싶다. 하지만 나에겐 조금 밸런스가 깨진 듯한 느낌을 주어 아쉬움이 남는 맥주.


4. 윗 웻 웻(Wit Wet Wet)

 : 최근 호가든으로 대표되는 벨지안 화이트도 즐겨마시는 편이라 별 생각없이 손에 들고 마셨는데, 이 녀석만큼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닌 녀석이 나와버렸다. 아마도 고수의 특징을 극대화시켜서 흔희 얘기하는 '화장품 혹은 비누'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 듯 싶은데 앞 서 바나나 화이트도 그렇고 이 양조장은 맥주의 특징을 전면에 내세우려 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나에겐 이렇게 밸런스가 깨지게 강조된 맛은 취향이 아닌 듯 싶었는데 아내는 또 이걸 거부감 없이 잘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입맛이 잘못된 가 싶어서 다시 마셔봤지만 역시나 마찬가지.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이걸 잔 째 시켜서 마시고 있는 커플도 있는 걸 보면 아직 내 수양이 부족한 가 싶다.


5. 걸 스타우트(Girl Stout)

 : 이 녀석까지 마시고나니 슬슬, 이 양조장의 특징이 보이기 시작한다. 축구로 따지면 아마도 원 톱 체제 같은 느낌. '이 맥주란 바로 이 맛에 먹는 것이다.' 라고 완벽한 방향성을 주는 기분이다. 스타우트 역시 초콜렛과 알싸한 에스프레소의 향과 맛이 주를 이루곤 하는데 이 녀석은 잔에 향을 맡기 위해 다가가자마자 바로 진한 초콜렛 향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한 목음 마셨을 뿐인데 입속에 퍼지는 몰트의 고소한 맛이 에스프레소의 풍미를 느끼게 해준다. 앞 서 얘기한 벨지안 화이트나 바이젠 맥주에 비해서는 특징을 살리면서도 밸런스가 꽤나 잘 잡힌 맥주처럼 느껴져서 한 잔을 다 마시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듯 싶었다. 



 맥주 다섯 잔을 완벽히 클리어하고, 맛있는 피자까지 마시고 나니 슬슬 졸려오기 시작한다. 최근 수제 맥주집이 많이 생기긴 하였으나 양조장과 직접 연결되어 운영하는 수제 맥주집을 찾는 건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게 바로 집에서 걸어가면 나올 법한 장소에 있는 건 꽤나 행운이다. 



 종류별로 이렇게 특색있는 라벨도 갖춰놓았으니 조만간 몇 캔 사와서 친한 사람들과 함께 그 맛을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만났지만 전혀 후회되지 않은 인연이 된 거 같아 기분 좋은 저녁. 가끔씩 나와서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거 같아 좋다.   


칼리가리박사의 밀실

031-23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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