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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훗카이도] Day 01 - 삿포로 라멘골목(라멘요코쵸 - 히구마), 미소라멘의 시작을 만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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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훗카이도] Day 01 - 삿포로 라멘골목(라멘요코쵸 - 히구마), 미소라멘의 시작을 만나다

추락천사 2018. 1. 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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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도 일주일에 몇번은 라면 생각이 나곤한다. MSG가 주는 감칠맛부터 면발에서 느껴지는 밀가루의 쫄깃함까지. 무엇하나 건강에 좋은 건 없지만 그만큼 음식 자체가 주는 다른 건강식에 비할바가 아니다. 하지만 매운맛 일색인 국내라면은 인스턴트 음식이라는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과거 헝그리 복서의 전유물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반면에 일본의 라멘은 음식 문화 자체로 인식되면서 하나의 외식 메뉴, 굳이 비교하자면 서양의 파스타와 비슷한 위치를 자치하며 나름의 고급스런 자리를 다지고 있다.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라멘은 국물부터 위에 올라가는 토핑까지 그 종류가 수십가지에 이를 만큼 다양한 종류를 보여주고 있었다.

 삿포로에서는 특이하게도 이런 라멘의 문화를 이끌어간 골목이 있다고 해서 여행을 오기전부터 꼭 들려야할 곳으로 정해뒀다. 일명 라멘요코초(元祖さっぽろラーメン横丁, 라멘골목). 1951년에 8개의 라멘집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15곳이 성업중인 이 골목은 어느곳이 맛집이랄 것 없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수십년째 가게를 꾸려오고 있는 곳이다. 어느곳에 가더라도 기본 이상의 맛이 보장되는 곳이니 너무 길게 줄서서 들어가는 것 보다는 시간 맞는 가게에서 여유롭게 즐기다가 나오는 걸 추천하고 싶다.


[라멘 요코쵸 위치]


 라멘 요코쵸를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스스키노역 5번 출구에서 걸어가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물론 삿포로역에서 걸어가도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으니 굳이 어려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보다는 주변을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걸어가는 걸 추천한다. 12월의 거리답지 않게 일본의 스스키노역 근처 거리는 꽤 한산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여행지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반면에 훗카이도의 관광지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편이라 이렇게 거리를 걷는 것 만으로도 여행에서 내가 갖고자 하는 텅빈 생각의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조용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거기에 싸늘한 바람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걷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모두의 일상속에서 내가 느끼는 휴양>

 
 그렇게 10여분을 구글맵을 친구삼아 걷다보면 어느새 라멘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걸음 더 걷다보면 아주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라멘집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치 종로의 피맛골이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 가 생각이 든다.


<좁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골목의 입구>

 

 앞 서 얘기했던 것 처럼, 어느 집에서도 기본이상은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너무 긴 줄이 서있는 곳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렇다고 너무 사람이 없는 곳도 조금은 마음에 걸리니 적당히 사람이 있는 곳 중에서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은 곳으로 선택했다.


<우리의 선택, 히구마>


 손님이 그렇게 많이 몰리는 거 같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웨이팅 시간이 긴가 싶었는데 안에 들어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님응대, 계산 그리고 음식조리까지 이곳 주인 한분이 다 하고 계신거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에서는 판매하는 교자도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은 라멘과 맥주 뿐. 교자를 먹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곳 주인아저씨에게 풍기는 포스가 몹시 라멘라멘 했기 때문에 그걸 기대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다른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보니 수교자는 판매한다고 한다.)

 


<포스 강렬한 히구마 주인 아저씨>


 라멘요코쵸가 미소 라멘으로 유명해진 곳이니 당연히 첫번째 메뉴는 미소 라멘. 그리고 이곳에 오는 동안 너무 느끼한 걸 많이 먹은 탓에 속을 좀 중화시키고자 매운 미소 라멘 추가. 그렇게 두 가지 메뉴를 시켜놓고 식전주로 삿포로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삿포로 클래식을 주문했다. 정말 냉장이 될지 의심스러운 서랍(?)에서 꺼내주는 삿포로 클래식은 내 의심을 비웃듯이 아주 차갑게 식혀져 있었다. 처음 만나는구나 삿포로 클래식. 앞으로 일주일 동안 잘 부탁한다.



<앞으로 매 끼마다 만나게 될 삿포로 클래식>


 그렇게 삿포로 클래식과의 첫 번째 만남을 기념하고 있다보니, 곧 이어 오늘의 메인 메뉴인 라멘이 등장했다. 훗카이도에서의 첫 끼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중에 하나인 라멘을 접한 시간이다보니 잠시 감상의 시간을 갖고, 경건한 마음으로 먹기 시작했다. 제일 걱정됐던 건 국물의 느끼함.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하다보니 차슈까지 더해지게 되면 국물의 깊은 맛을 느끼기도 전에 느끼함에 질리게 마련이다. 일단 국물로 만난 첫 느낌은 '생각보다 담백하다' 였다. 미소 된장이 맛을 잡아준건지 아니면 닭육수를 특별한 방법으로 끓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 혹은 그냥 내 기분상 - 평소 먹었던 라멘 보다는 깊은 맛과 느끼함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듯 했다.

 사실 그것보다도 더 감동이었던 건 면발의 생생함. 시간에 맞춰 끓여냄과 동시에 여러번 헹궈내시는 노력을 하셔서 어느 정도 면발이 살아있겠거니 했는데, 이건 국물보다도 면발이 열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소라멘>


<매운 미소라멘>


 처음엔 무심한 듯 말을 툭툭 던지시는 게 무섭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먹는 중간 중간 재밌는 얘기도 하시고 노래도 부르시는 모습에 살짝 츤데레(?)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요리하실 때 만큼은 라멘 장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포스가 느껴진다. 하루에 몇 그릇의 라멘을 혼자서 만드실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의미가 없을만큼 경지에 오르신 게 아닐까 생각된다.



<라멘 장인>


 깔끔하게 비운 라멘의 빈그릇들. 국물까지 다 마셔버리고 싶긴 했지만 그랬다가는 하루종일 물을 마셔야 될 거 같아서 포기했다. 아무리 담백하다고 하지만 라멘에 들어간 소금이 적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저기에 밥이라도 말아먹었으면 더 맛있었을텐데... 아쉽다. 아쉬워.

 


<아쉬운 빈그릇들...>


<라멘요코쵸 - 히구마로 오세요!>

 일본 훗카이도, 그것도 미소라멘의 성지인 라멘요코쵸에서 첫 끼를 마무리했다. 그저 인스턴트 음식으로 치부받던 라면과는 다르게 하나의 음식문화로 자리잡은 라멘. 이제 한국에서도 이 맛있는 라멘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그 맛과 향이 같을지라도 세월이 만드는 분위기 만큼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맛있게 그리고 기분 좋게 한끼 식사를 마쳤다. 이제 삿포로의 맥주 역사를 만나러 가자.


[지출 내역]
 1. 미소 라멘 : 750엔
 2. 매운 미소 라멘 : 850엔
 3. 삿포로 클래식 : 4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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